8월의 세이브그리트 존경하는 인물,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았다.
손녀에게는 대학을 마칠 학비만 남겼다.
그리고 평생 일군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사회로 돌려보냈다.”

1971년 3월 11일,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유언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창업자가 일군 회사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시대였지만 유일한 박사는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가족에게 회사의 경영권을 넘기지도 않았습니다. 회사의 미래는 혈연이 아니라 능력과 경험을 갖춘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평생 일구어 온 재산은 교육과 장학, 사회사업을 위해 쓰이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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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柳一韓, 1895~1971) 박사는 기업가이면서 독립운동가·교육자·사회사업가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그는 “기업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라는 철학을 실천하며, 한국 기업사에서 보기 드문 사회적 책임과 전문경영인 제도의 모범을 남겼습니다.

그의 생애와 유한양행 설립

  •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성장했으며,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했습니다.
  • 미국에서 식품회사인 라초이(La Choy) 식품회사를 세워 숙주나물 통조림 등을 판매했습니다.
  •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국의 가난과 질병을 목격한 뒤, 사업 기반을 정리하고 귀국했습니다.
  • 1926년 12월 10일 서울 종로에 유한양행을 설립했습니다. 당시 그는 “건강한 국민만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나라의 독립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제약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유한양행은 초기부터 의약품을 수입·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 보건에 필요한 의약품을 공급하며 성장했습니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진통·소염제인 안티푸라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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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

유일한 박사는 기업 경영만 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 1919년 미국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지원했습니다.
  •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한인 사회의 독립운동과 외교 활동에 힘을 보탰습니다.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전략정보국, 즉 OSS와 관련된 항일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 1945년에는 재미 한인들을 중심으로 국내 침투를 준비하던 비밀 작전인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에 참여했습니다.

냅코 프로젝트는 한인 요원들이 군사·첩보 훈련을 받은 뒤 한국에 들어가 일본군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독립을 돕는 계획이었습니다. 유일한 박사는 당시 50세의 나이로 제1조 조장을 맡았지만, 일본의 항복으로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사후인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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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로서의 철학

유일한 박사의 경영 철학은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이었습니다. 우선 유일한 박사는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스스로 삶을 개척했고, 미국에서 사업을 일으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안정된 삶을 이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926년 조국으로 돌아와 유한양행을 설립했습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였습니다. 그가 만들고자 했던 기업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좋은 의약품을 공급하고 국민의 건강에 기여하는 기업, 그리고 사회로부터 얻은 이익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는 기업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기업의 주인은 사회라는 생각

그는 기업을 창업자의 개인 재산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유한양행의 공식 자료에도 유 박사가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며, 관리만 개인이 할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유한양행은 1936년 개인기업에서 주식회사로 전환했습니다. 이후 유일한 박사는 가족에게 경영권을 세습하기보다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운영하도록 했습니다.

유일한 박사의 철학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순간은 1969년이었습니다. 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회사를 아들에게 넘기지 않았습니다. 사위나 친척을 후계자로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회사의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겼습니다. 당시로서는 결코 흔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말하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일찍부터 실천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종업원과 이익을 나누는 경영

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은 한 가족의 재산이 아니라 직원과 소비자, 주주, 그리고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기업이라고 생각습니다. 따라서 종업원도 회사의 성장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한양행은 1939년 우리나라에서 이른 시기에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1962년에는 제약업계 최초로 주식을 상장해 자본과 경영을 분리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투명경영과 성실납세

그는 탈세나 정경유착을 경계하고, 기업이 국가에 세금을 성실하게 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유한양행은 1968년 모범납세기업으로 선정되어 동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이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세금을 줄여야 할 비용으로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기업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ESG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그는 기업과 사회의 관계를 고민했던 것입니다.

기업이 이익을 얻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익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사회에 어떤 책임을 다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를 어디에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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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그것으로 해서 스스로 나의 존재가치를 깨닫는다면, 실패 그것은 이미 나의 재산인 것이다.

교육은 물려줄 수 있지만, 인생까지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자녀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주어 스스로 살아갈 힘을 주고, 회사에는 능력 있는 경영자를 세우고, 사회에는 교육과 장학의 기회를 돌려주었습니다. 이것이 유일한 박사가 남긴 특별한 유산이었습니다.

재산보다 오래가는 것을 남기다 – 교육과 사회환원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재산을 가족에게 대규모로 물려주기보다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유언에 따라 조성된 기금은 훗날 유한재단으로 발전해 장학사업과 교육·사회복지 사업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유재라 역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일한 박사 일가는 기업가의 부와 사회적 책임을 함께 보여준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이렇게 유일한 박사는 기업과 재산이 지속적으로 사회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구조를 남겼습니다. 자신의 선한 뜻을 후손의 선의에만 맡긴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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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박사의 의미

유일한 박사를 단순히 “유한양행을 세운 제약회사 창업자”로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다음 네 가지 삶을 함께 실천한 인물입니다.

분야주요 활동
기업가1926년 유한양행 설립, 제약산업 발전
독립운동가미국 한인 독립운동과 냅코 프로젝트 참여
교육자학교 설립과 인재 양성 지원
사회사업가재산의 사회 환원과 장학·복지사업 추진

그의 핵심 유산은 “기업의 이윤은 사회로부터 얻은 것이므로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유일한 박사는 한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인 기업인, 그리고 가족 세습보다 사회적 공공성을 중시한 창업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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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그리트가 8월의 인물로 유일한 박사를 기억하는 이유

유일한 박사님의 삶에는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는 사회적 가치가 깊이 담겨 있습니다. 그가 비록 76세로 영면하셨지만 계속 그의 정신은 살아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사람의 건강을 생각하는 기업. 정직한 기업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 교육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기회를 주는 사회. 자신이 가진 것을 다시 공동체에 돌려주는 나눔. 그리고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가치를 남기는 삶으로 그의 이름을 남기신, 기업의 성공이 사회의 희망이 되게 하신 유일한 박사님을 존경합니다.

유일한 박사님은 어떻게 벌 것인가보다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보여 주셨고,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보다 어떤 가치를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행한 분으로 세이브그리트는 8월의 ‘존경하는 인물’로 기억하고자 합니다.

유일한 박사님은 상당히 앞서 가신 분으로 그의 기도문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혼자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도, 사회도, 환경도, 우리의 미래도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누고, 내가 얻은 기회를 다음 사람에게 전하고, 내가 만든 성과가 사회에 다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성공일지도 모릅니다.

— SAVE GREET —
생명을 살리고, 환경을 살리고, 사람과 사회의 가치를 살리는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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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박사를 멘토로 움직이는 기업 – 굿모닝365

굿모닝365 이진서 회장은 굿모닝365가 단순히 하나의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을 넘어, 건강한 삶과 사회적 가치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를 멘토로 삼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일한 박사가 한 시대에 보여주었던 실천이 오늘 또 다른 기업과 사람들의 가치로 이어지고, 그 가치가 다시 사회로 확산된다면 그 자체가 아름다운 선순환이 될 것입니다.

유일한 박사님의 정신을 기억합니다. 이진서 회장님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굿모닝365의 건강한 성장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