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탄생배경
서양 속담에 “흐르는 시냇물에서 돌들을 치워 버리면 그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 역경과 고난의 돌을 치워 버리면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됩니다.
‘”할렐루야”‘를 작곡한 헨델은 건강이 매우 나빠져 병을 고치기 위해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그러고도 돈이 모자라서 남의 돈을 빌려 썼습니다. 그리고 건강도 찾지 못했고 돈도 갚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반신불수의 비참한 상태로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불행했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연주를 듣던 왕도 일어섰다는 불후의 명작 ‘할렐루야’를 작곡한 곳은 바로 그 감옥에서 였습니다.
불우의 명작 “할렐루야” 를 작곡한 혠델이 호화스럽고 행복한 위치에 있었다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헨델의 할렐루야를 작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돈도 건강도 찾지 못하고 비참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얼마나 혼심의 힘을 다해 열정을 불살랐으면 “할렐루야”란 곡을 작곡 했을까요?!
저희들도 인생 살아가면서 고통과 역경 앞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쓰러지는 자가 아닌 그 역경을 딛고 일어나 헨델처럼 제2의 인생을 창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갈릴리해 vs 사해
슬픔의 땅, 팔레스타인에는 2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해이고, 하나는 사해입니다. 똑같이 요단강에서 흘러 들어가는 바다인데 갈릴리해는 물이 맑고, 고기도 많으며, 강가엔 나무가 자라고, 새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바다입니다.
그런데 사해는 더럽고 바다에 염분이 너무 많아 고기도 살 수 없고, 새들도 오지 않고 어떠한 생물도 살지 않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똑같은 요단강 물줄기에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갈릴리 바다와 사해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왜 하나는 생명이 숨쉬는 바다가 되고, 하나는 이름 그대로 죽음의 바다가 되었을까요?
요단강 때문도 아니고 토양 때문도 아니고 기후 때문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갈릴리해는 강물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가두어 두지 않습니다. 한 방울이 흘러 들어오면 반드시 한 방울은 흘러 나갑니다. 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 사해는 들어온 강물을 절대 내어놓지 않습니다. 한 방울이라도 들어오면 자신의 것이라고 그것을 가져버리고 한 방울의 물도 내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받기만 하고 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생명의 바다와 죽은 바다의 차이는 받은 만큼 주는 것과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사해같은 사람, 갈릴리해같은 사람 !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시나요?
부족할 것 없던 중국의 진시황도, 영원한 아름다움의 대명사 오드리 햅번도, 세계주먹으로 이름을 날린 무하마드 알리도, 돈과 명예를 가졌던 이병철 정주용회장도, 시대를 이끌어 갔던 스티브잡스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웃겨 주었던 이주일도 왕복이 없는 인생열차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가치있는 이름을 남기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는 인생이 될까요? 사랑과 나눔에 최선을 다하는 SAVE GREET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