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옥 교수 “영화는 예술이자 선전…평양의 문화 수준은 높지만 자유는 없다”
[SG-HATT NEWS, 알브레인]=북한의 수도 평양은 단순한 행정 중심지를 넘어, 국가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연출한 무대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문화적 쇼윈도우’이자, 주민들에게 체제 충성을 각인시키는 공간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곽인옥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평양은 북한의 얼굴이자 정치적 상징”이라며 “문화시설과 교육 수준이 높지만, 그 본질은 철저히 체제 선전을 위한 장치”라고 지적했다.
■구역마다 자리한 영화관, ‘문화의 장’인가 ‘선전의 장’인가
평양 시민이라면 누구나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 대표적인 시설인 평양국제영화관은 1989년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에 맞춰 건립된 대규모 영화관으로, 국제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는 수준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좌석 수만 2천여 석에 달하며, 다목적 상영관과 부대시설까지 완비돼 북한이 대외적으로 자랑하는 상징적 건물이다.
대동강극장은 평양 중심가에 자리한 또 다른 대표 극장으로, 평양 시민뿐 아니라 해외 방문객에게도 공개되는 경우가 많다. 내부는 대리석 장식과 붉은 벨벳 좌석으로 꾸며져 있으며, 규모 면에서는 국제영화관에 미치지 못하지만 관리 상태가 좋아 ‘중급 문화시설’로 평가된다.
곽인옥 교수는 “평양에는 구역마다 하나씩 영화관이 있어 시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며 “지방의 낙후된 시설과 비교하면 상당히 현대적이며,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화표 가격은 주민 월급의 몇 퍼센트에 불과해 부담이 거의 없다. 다만 영화를 보러 가는 행위 자체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조직생활’의 일부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서구적 의미의 여가 문화와는 다르다.
■단체 관람의 풍경
평양에서는 영화관람이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학교·직장·군부대 단위로 조직되는 경우가 많다. 곽 교수는 “학생들이 단체로 교복을 입고 영화관에 들어서면, 상영 전에 지도 교원이 ‘오늘의 영화가 당의 뜻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잘 새기라’는 식의 지도를 한다”고 전했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토론이나 감상문 작성이 이어지기도 한다.
관객들의 반응은 영화에 따라 다르다. 체제 선전 영화에 대해서는 형식적으로 박수와 구호가 이어지지만, 일부 외국 영화나 음악 공연 장면이 삽입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젊은 층은 서양식 음악이나 남한식 멜로 장면이 나오면 숨죽여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공식적으로는 금기시되지만, 주민들의 실제 취향이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곽 교수는 말했다.
■스크린 속 ‘고난의 행군’
북한 영화에서 자주 다뤄지는 주제는 바로 ‘고난의 행군’이다. 1990년대 대기근 시기를 재해석한 영화들은 대부분 “지도자의 영도와 주민들의 충성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서사 구조를 따른다.
예를 들어 영화 〈우리의 길〉은 식량 부족과 추위를 견뎌내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결국 당의 지시에 따라 협동농장에 헌신하는 결말로 끝난다. 또 〈신념은 영원하다〉는 군인들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반드시 산다”는 구호를 외치며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준다. 곽 교수는 “이런 영화는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집단적 기억을 재구성하고 지도자 중심의 충성을 강화하는 정치적 도구”라고 분석했다.
■수령 미화 영화의 전형적 구조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찬양하는 영화도 다수다. 대부분은 세 가지 구조를 따른다.
- 위기 상황 – 전쟁, 기근, 자연재해가 닥친다.
- 지도자의 등장 – 지도자의 지시 한마디, 방문 한 번으로 상황이 반전된다.
- 주민들의 충성 – 주민들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해 위기를 극복한다.
곽 교수는 “북한의 수령 미화 영화는 관객에게 ‘지도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주입한다”며 “영화가 감동을 주는 장르가 아니라 체제의 논리를 시각화하는 장르로 변질된 사례”라고 강조했다.
■문화 수준과 체제 선전의 모순
평양 시민들은 북한에서 가장 높은 문화적 수준을 누린다. 평양시민증을 소지해야만 거주할 수 있으며,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았고 다양한 문화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화적 향방은 자유로운 창의성이 아니라 체제 충성으로 제한된다. 곽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평양의 영화관은 시설 면에서는 국제적 수준에 가깝다. 하지만 스크린에 걸리는 작품은 주민들의 눈과 귀를 철저히 통제하는 선전 도구에 불과하다. 높은 교육 수준과 현대적 시설이 있음에도, 자유로운 예술적 상상력이 억압된다는 점이 가장 큰 모순이다.”
■화려한 쇼윈도우, 그러나 닫힌 창문
겉으로 보기엔 평양은 문화적으로 풍요롭다. 영화관은 구역마다 잘 지어져 있고, 주민들은 부담없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국제영화관에서는 해외 영화제가 열리기도 하고, 대동강극장은 고급 공연장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그 모든 스크린 속 이야기는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된다. “지도자에 대한 충성 없이는 삶도, 예술도 없다.”
곽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평양의 영화관을 보면 북한의 문화가 얼마나 이중적인지 알 수 있다. 주민들이 실제로는 다른 문화에 목말라 있지만, 공식 무대에서는 선전 영화만 접할 수 있다. 결국 평양은 화려한 쇼윈도우이지만, 그 안의 창문은 철저히 닫혀 있는 셈이다.”

■알브레인의 북한의 세대간 문화갈등 질문에 대하여
북한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여전히 체제 중심적이고 올드한 작품이 많다. 하지만 북한의 젊은 세대는 보다 현실적이고 새롭고 신선한 콘텐츠를 원하며, 이로 인해 문화적 갈등이 존재한다.
곽 교수는 “북한의 기존 영화와 드라마는 체제 선전 중심으로, 젊은 층에게는 공감대가 낮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최근 방송된 드라마 《백학평원의 새 봄》은 부패, 관료주의, 가족 갈등 등 현실 문제를 다루며 도시 젊은 층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다만 이러한 작품도 여전히 통제된 선전 목적 안에서만 제공된다.
외부 문화의 은밀한 유입 역시 눈에 띈다. 북한 청년들은 USB, SD카드 등을 통해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몰래 시청하며 현실을 탈피하고 위안을 얻는다. 탈북자 강규리 씨는 “고등학생 때 〈김비서가 왜 그럴까〉, 〈겨울연가〉, 〈이태원 클라쓰〉 등을 몰래 봤다”며, 이는 단순 오락을 넘어 자아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증언했다.
반면, 정부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 제정)을 통해 한류 콘텐츠 유포를 강력히 처벌하며, 문화적 표현까지 엄격히 단속한다. 여성의 미니스커트 착용이나 ‘오빠’나 ‘남친’ 한국식 표현 사용도 제한된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는 미시적 미디어 저항을 통해 자신만의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곽 교수는 “북한 내 젊은 세대는 현실적이고 자유로운 콘텐츠를 원하지만, 체제 통제와 갈등 속에서 문화 소비의 욕구를 계속 찾고 있다”며 “향유의 틈을 찾아내는 것이 젊은 층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인터뷰 발언
“정말 현실적인 이야기에 끌려요. 우리가 겪는 고충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를 보고 싶어요.” – WSJ 인터뷰
“한류 드라마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줬거든요.” – 탈북 청년 강규리 씨

북한 MZ세대의 문화적 특징
북한 내부의 MZ세대(주로 19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생활 방식과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외부로 드러내기 어려운 부분도 많지만, 몇 가지 특징적인 모습이 있다.
■패션과 스타일
- 남한 드라마나 중국 유행을 은밀히 참고해 옷차림을 꾸민다.
- 여성들은 짧은 치마, 컬러 염색, 화장품을 선호한다.
- 남성들도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쓰고, 남한식 ‘댄디’ 스타일을 흉내 낸다.
■음악·영화 취향
- ‘구몽(口蒙)’이라 불리는 USB·SD카드에 담긴 남한 드라마, K-pop, 중국 영화 등을 몰래 시청한다.
- BTS나 블랙핑크 같은 그룹을 은밀히 따라하며 춤 연습을 하는 청년들도 있다.
■디지털 문화
- ‘노트텔’(DVD 플레이어와 TV 기능이 합쳐진 기기)이나 중국산 휴대폰으로 콘텐츠 소비한다.
- 일부 국경 지역 청년들은 중국 인터넷망에 접속해 SNS·게임을 체험하기도 한다.
■연애와 사교
부모 세대처럼 집안의 주선만 따르지 않고, 몰래 데이트하거나 친구들끼리 어울려 커플 문화 형성하기도 한다.
‘나이트 산책’, 강가 모임 같은 은밀한 소셜 활동이 존재한다.
■소비 문화
시장(장마당)에서 브랜드 가방·화장품(대부분 중국산 또는 밀수품)을 찾으며 자기 개성을 표현한다.
남한 로고나 캐릭터가 붙은 물건을 갖는 것이 은밀한 ‘힙’으로 여겨진다.
■곽인옥교수의 총평 및 발언
북한 내부의 MZ세대는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문화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체제가 요구하는 ‘혁명적 청년상’을 표면적으로는 따르는 듯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는 외부 문화를 은밀히 수용하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평양의 영화관은 시설과 문화 수준은 높지만 상영작 대부분이 체제 선전용인 까닭에, 젊은 세대가 원하는 현실적이고 자유로운 이야기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백학평원의 새 봄》처럼 현실 문제를 다룬 작품이 부분적인 호응을 얻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허용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북한의 젊은 세대는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한류 드라마와 음악을 몰래 즐기며 자신만의 ‘은밀한 문화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북한 문화의 진정한 가치는 체제가 허용한 틈새 속에서 ‘향유의 자유’를 추구하려는 이 젊은 층에게 있다고 믿는다.
▼곽인옥교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아래 이미지 클릭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