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은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하천으로, 총 22개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이 다리들은 청계천의 역사적 발전과 함께 다양한 기능과 상징을 담고 있다. 청계천과 그 다리들은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오늘날까지도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 청계천의 역사적 배경
청계천은 조선시대부터 서울을 흐르는 중요한 하천이었다. 본래 “개천”으로 불리던 이 하천은 도심의 배수를 담당하며 서울 시민들의 생활에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점차 서울 인구가 증가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하천 오염과 홍수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하천의 정비가 필요해졌다.
조선 초기에는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이 청계천 정비에 큰 공을 들였다. 특히, 정조대왕은 하천 주변에 제방을 쌓고 물길을 확장하여 홍수 피해를 줄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청계천의 이러한 관리 역사는 이후 조선 후기까지도 지속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이후, 청계천은 빠르게 산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결국 하천 위에 고가도로가 세워지며 청계천은 도심 아래 묻힌 하천으로 변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에 들어 청계천 복원사업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하천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다리들도 복원되거나 새롭게 지어졌다.
2. 청계천의 22개 다리: 역사와 문화
청계천이 시작되는 청계광장부터 동쪽으로 옛 도성 안쪽(동대문 오간수문터가 있던 곳)에는 “모전교”를 시작으로 “오간수교”까지 14개의 다리가 있고, 도성 바깥쪽에는 “맑은 내 다리”부터 “고산자교”까지 8개의 다리가 있다.
청계천 복원구간은 청계광장부터 고산자교 다음에 있는 신답철교 구간이었으나, 전철만 다니는 “신답철교”와 미 복원 구간인 “제2 마장교”(1969년 시공, 1979확장, 1990년 재확장)는 주요 다리에 포함되지 않았다.
1. 모전교
모전교는 청게천 다리의 시작점으로 조선시대 이 다리 모퉁이에 과일을 파는 가게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모전교(毛廛橋)라는 이름은 ‘모전(毛廛)’ 또는 ‘과전(果廛)’이라고 하는 과일가게에서 시작되었다.
2. 광통교
광통교는 조선시대 청계천을 가로지르던 대표적인 다리로, 서울의 중요한 교통로 중 하나였다. 특히 왕실과 관련된 의례나 행사가 있을 때 왕족들이 지나가던 다리로 유명했다. 원래 1483년 조선 성종 때 건설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철이 다니기도 하였으며, 정월대보름이 되면 도성의 많은 남녀가 이 곳에 모여 답교놀이를 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12m 길이로 다리중 가장 짧다.
3. 광교
광교는 다리 위나 아래가 엄청 넓다. 길이보다 폭이 더 넓다. 그래서 광교인가? 현재 광교사거리가 이 위치에 해당한다.
4. 장통교
조선시대 장통방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이 다리 부근에 긴 창고가 늘어서 있었다고 하여 장창교, 장찻골다리 줄여서 장교라고도 불렸다. 1480년 이전에 설치되었고 2005년 9월 청계천 복원시 현대식으로 준공되었다. 장통교는 특히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던 다리로, 경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의 주요 배경 중 하나로 등장하기도 했다. 영상 합성물에서 자동차 폭발 사건 등 다양한 사건의 배경으로 활용되었다.
5. 삼일교
삼일교는 3·1 운동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이름이 붙여졌다. 3·1 운동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대규모 독립운동으로, 일본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며 대한민국의 독립을 외쳤던 국민적 저항의 상징이다. 삼일교는 이 운동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1940년대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해방 후 1960년대에 그 이름이 공식적으로 부여되었다
6. 수표교
수표교는 조선시대 한양의 물 높이를 측정하기 위한 “수표”가 세워졌던 다리이다. 이 다리 아래에 설치된 수표는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하는 역할을 하여 홍수 피해를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7. 관수교
조선시대 이곳에 청계천 준설사업을 위한 준천사를 설치하고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으므로 1918년 일제가 다리를 놓고 관수교라 하였다. 청계천 복개로 다리가 없어졌다가 2005년 9월에 전통 한옥의 대청 양식을 도입한 아치교 형태로 새로 건설하였다.
8. 세운교
조선시대 소경들이 많이 살았다 하여 맹교 혹은 소경다리가 불렸던 효경교를 2005년 9월 청계천 복원 시 다리 옆에 세운상가가 있어 다리 이름을 세운교라 하였으며, 세운상가에 조명가게가 많아 다리에 빛을 이미화하여 표현하였고 2층으로 준공하였다. 세운상가는 서울의 전자상가 중심지로, 한때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메카로 불렸다. 세운교는 청계천 복원사업 이후 현대적인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으며,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9. 배오개다리
2005년 9월 준공된 다리로 종로 4가에 있던 배오개라는 고개에서 유래하여 배오개다리라 하였으며, 배오개 길을 넘는 사람들의 만남을 상징화하였다.
10. 새벽다리
11. 마전교
현 방산시장 앞 청계천에 놓여있던 다리로, 조선시대 우마를 매매하던 시장이 있다고 하여 마전교라 불렀고 속칭 소다리라고도 하였다. 2005년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새로 마전교가 가설되었다.
12. 나래교
2005년 9월 청계천 복원공사로 준공된 다리로 나비가 날래를 활짝 편 형상으로 동대문 의류 상권이 세계 패션 1번지로 비상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13. 버들다리(전태일 다리)
2005년 9월 준공된 다리로 과거 오간수문 상류에 왕버들이 많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주변에 전태일(1948 – 70년) 열사와 관련 있는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2010년 10월 개인 이름을 교량 명칭으로 붙인 서울시의 첫 사례라고 한다.
14. 오간수교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나가는 지점, 즉 동대문에서 을지로 5가로 가는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이다. 아치형으로 된 5개의 구멍으로 만들어졌다. 오간수교는 청계천의 서쪽에 놓인 다리로, 조선시대 한양의 서민들이 청계천을 건너기 위해 자주 사용했던 다리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다리의 폭이 다섯 칸 정도로 넓었던 것이 특징이다. 오간수교는 한때 청계천의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했으며, 복원사업 이후에도 역사적 가치를 지닌 다리로 주목받고 있다.
15. 맑은 내 다리
2005년 9월 청계천 복원 시 준공된 다리로 청계천을 순우리말로 바꾼 이름이다. 아치구조와 크로스 케이블로 조화시켜 힘찬 도약을 연출함으로써 패션 중심의 상징성을 부여하였다.
16. 다산교
2005년 9월 청계천 복원과 함께 준공된 다리로 다산로와 연결되어 다산교라 하였다.
17. 영도교 (띄엄다리, 영미교)
이 다리는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귀양갈 때 단종비 정순왕후가 이 다리까지 배웅 나와 이별하였는데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영영 이별하였다고 하여 영 이별 다리라고 불렀다. 2005년 9월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새로 영도교가 가설되었다.
18. 황학교
2005년 9월 청계천 복원과 함께 준공된 다리로, 옛날 이곳 논밭에 황학이 날아왔다는 전설에 따라 동명이 황학동이 되었는데, 다리 이름은 동명에서 비롯되었다.
19. 비우당교
조선 세종때 정승을 지낸 청백리 하정 유관이란 분이 장마철에 우산을 쓰고 살 정도 청빈하였는데, 조선 후기 실학자인 지봉 이수광이 이곳에 작은 집을 짓고 당호를 비우당 이라 하였고, 2005년 9월 청계천 복원 시 이 다리를 준공하면서 다리의 이름을 비우당교라 하였다.
20. 무학교
조선시대 무학대사가 도읍을 정하기 위해 자리를 살피던 중 왕십리지역까지 왔으므로 도로명을 무학로라 하였고, 여기서 다리 이름이 유래하였고, 2005년 9월 준공되었다.
21. 두물다리
다리 바로 아래쪽에서 청계천과 정릉천 두 물줄기가 합해지므로 두물다리라고 하였다. 2005년 9월 청계천 복원과 함께 준공되었다. 다리모양도 서로 만나는 형상이다.
3. 다리들의 현대적 재해석
청계천 복원사업 이후, 22개의 다리들은 각기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간직하면서도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었다. 복원된 다리들은 과거의 역사를 기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시민들의 휴식과 소통의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이 다리들은 청계천 산책로를 따라 걷는 이들에게 서울의 역사를 느낄 수 있게 하며, 동시에 청계천을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오늘날 청계천의 다리들은 단순한 교통로를 넘어 서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상징적인 구조물로서, 도심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고 있다. 각 다리는 그 자체로 과거 서울의 생활사와 문화를 담고 있으며,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시민 행사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문화 공간으로도 기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