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목,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빈손으로 시작해 세계적 기업을 일궈낸 입지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성공 뒤에는 단순한 근면이나 열정만이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지혜가 숨어 있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평생의 경험을 압축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네 가지를 속여라.”
이 표현은 얼핏 듣기에는 부정적이거나 기만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정 회장이 말한 ‘속여라’는 거짓으로 속이라는 뜻이 아니라, 절제하라, 감추라, 드러내지 말라는 지혜의 은유였습니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쉽게 약점이 될 수 있는 네 가지, 즉 건강, 돈, 사람, 마음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1. 건강을 속여라 – 강한 자 옆에는 경쟁자가, 약한 자 옆에는 동지가
정주영 회장은 젊은 시절 누구보다 건강하고 힘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대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묵묵히 일하며, 겸손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건강을 자랑하면 사람들은 그 힘을 이용하려 든다. 그러나 약한 듯 보이면 그 빈자리를 채워주려는 사람이 생긴다.”
강한 사람 곁에는 경쟁자가 모이지만, 약한 사람 곁에는 동지가 모입니다. 정주영 회장은 일꾼으로 일하던 시절에도 몸을 낮추며 신뢰를 얻었고, 결국 더 큰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SNS 시대에 우리는 종종 건강한 몸, 활력 넘치는 삶을 과시합니다. 그러나 그런 과시는 때때로 질투나 이용의 대상이 됩니다. 진정한 건강은 드러내기보다 묵묵히 쌓아 올리는 내공에 가까운 것입니다.
2. 돈을 속여라 – 돈을 드러내면 사람은 달라진다
정 회장은 평생 돈과 씨름했습니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굶주림을 견디며 자랐고, 장사를 시작할 때도 늘 빈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돈을 단순히 수단으로 보았고, 결코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돈이 많다고 떠벌리면 사람들은 돈만 보고 다가온다. 돈이 없다고 하면 진짜 마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남는다.”
실제로 그는 부자가 된 후에도 늘 검소하게 살았고, 협상 자리에서도 지갑이 텅 빈 척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허세가 아니라 돈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돈을 기준으로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돈을 숨김으로써 오히려 사람의 진심을 가려내는 필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직원들에게도 “돈 때문에 시작하면 돈 때문에 무너진다. 사람 때문에 시작하면 돈은 따라온다”고 가르쳤습니다.
3. 사람을 속여라 – 다 알았다고 믿는 순간 속는다
정주영 회장은 평생 수많은 배신을 경험했습니다. 동업자가 등을 돌리기도 하고, 믿었던 이가 속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끝까지 다 알 수 없다. 안다고 믿는 순간 속는 것이다.”
그에게 ‘사람을 속여라’는 말은 거짓으로 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믿는 듯 보여도 속으로는 한 발 물러서서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말보다 행동에서, 약속보다 실천에서 진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정 회장은 늘 신중했습니다. 겉으론 웃으며 대하지만 속으로는 선을 긋기도 했습니다. 욕심만 큰 사람, 말은 많지만 실천이 없는 사람, 눈앞의 이익만 쫓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수많은 위기에서 큰 피해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성급하게 ‘내 사람’이라 믿는 순간 큰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진짜 인연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4. 마음을 속여라 – 감정을 드러내면 약점이 된다
마지막으로 정주영 회장은 마음을 속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업가로서 그는 수많은 협상과 갈등 속에 살았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내가 속으로 불편해도 겉으로 웃을 수 있는 사람, 그가 결국 이긴다.”
분노를 곧장 드러내면 상대방이 약점을 잡습니다. 조급함을 보이면 협상에서 불리해집니다. 두려움을 드러내면 상대가 당신을 흔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속인다는 것은 인내, 여유, 강단을 뜻합니다.
정 회장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수많은 비난과 반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호탕하게 웃으며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속으로는 무수히 불안했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기에 직원들은 용기를 얻었고, 협력자들은 끝까지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5. 네 가지를 속여라 – 나를 지키는 갑옷
정주영 회장의 “네 가지를 속여라”는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지키는 갑옷이었습니다.
- 건강을 속여야 내 힘을 이용당하지 않는다.
- 돈을 속여야 진짜 인연을 구별할 수 있다.
- 사람을 속여야 배신에 흔들리지 않는다.
- 마음을 속여야 내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나를 쓰러뜨리려 하지만, 내가 먼저 내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6. 오늘날 우리가 얻을 교훈
현대 사회는 과시의 사회입니다. SNS에서 건강, 돈, 인간관계, 감정을 모두 드러내는 것이 당연시됩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반대로 겉은 숨기고 속은 단단히 지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 나는 건강을 자랑하는 대신, 겸손으로 동지를 얻고 있는가?
- 나는 돈을 드러내는 대신, 진짜 인연을 걸러내고 있는가?
- 나는 사람을 쉽게 믿는 대신, 행동으로 진심을 확인하고 있는가?
- 나는 감정을 그대로 내보이는 대신, 인내와 여유로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가?
정주영 회장의 철학은 결국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켜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를 흔들리지 않는 거목으로 만들었고, 한국 경제를 일으킨 원동력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