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생을 남기신 오기선 신부님

오기선 신부님은 1907년 11월 5일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1990년 7월 30일에 선종하신 한국 천주교회의 저명한 신부이자 교회사학가, 문필가로 활동하셨습니다. 그는 가난한 고아와 피난민들을 보살피며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셨습니다. 세례명은 요셉이었습니다. 그의 생애와 업적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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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선 신부님 생애

1907년 11월 5일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셨고 1932년 12월 사제품을 받으셨고 1937년 프란치스코 재속3회를 세우셨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충남도청 사회과에서 운영하던 ‘대전학원’ 고아원을 인수하여 ‘충남애육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하셨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시 고아들을 데리고 부산 송도로 피난을 가셨고, 허름한 판잣집에 고아원을 지어 3,000여 명의 고아들을 보살피셨습니다. 1963년 고아들을 훌륭히 키워낸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1971년 은퇴 후 103위 복자 시성운동과 성지 발굴 등 순교자 현양운동에 힘쓰셨고, 마카오와 필리핀 등에 김대건 신부의 동상을 건립하셨습니다. 그리고 1990년 7월 30일 83세의 나이로 선종하셨습니다.

오기선 신부님의 업적과 영향

  • ‘고아들의 아버지’: 가난한 고아와 피난민들을 끌어안고 보살피며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셨습니다.
  • 충남애육원 운영: 해방 직후 충남도청 사회과에서 운영하던 고아원 ‘대전학원’을 인수하여 ‘충남애육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고아들을 돌보셨습니다.
  • 한국전쟁 시 피난 고아원 운영: 한국전쟁 발발 시 고아들을 데리고 부산 송도로 피난을 가셔서 허름한 판잣집에 고아원을 지어 3,000여 명의 고아들을 보살피셨습니다.
  • 문화훈장 수훈: 고아들을 훌륭히 키워낸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으셨습니다.
  • 순교자 현양운동: 은퇴 후에는 103위 복자 시성운동과 성지 발굴 등 순교자 현양운동에 힘쓰셨고, 마카오와 필리핀 등에 김대건 신부의 동상을 건립하셨습니다.

오기선 신부님의 다양한 대외적 활동

다방면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오 신부는 방송을 통해서도 한국천주교회를 국내에 소개하는 데 관심을 쏟았습니다. 가톨릭 언론인들의 복음화에도 애정을 기울여 ‘가톨릭 언론인들의 대부’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오 신부는 동생 오기순(알베르토) 신부가 1941년 일본 도쿄대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으면서 한국 최초 형제신부라는 기록을 남겼고, 1949년 3월 사제로는 국내 최초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1941년 12월에는 서울대목구장을 일본인으로 교체하려는 일제 계획을 막고자 일본에 건너가 교황 사절 마렐라 대주교를 설득, 서울대목구장에 한국인 노기남 주교 임명을 도우면서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1990년 여든 두 살 고령에도 김대건 신부와 이승훈(베드로)의 발자취를 따라 15일간 중국 순례를 강행한 오 신부는 귀국 후 18일 만에 선종해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성모의 충실한 사제로 세상에 많은 빛을 남긴 오기선 신부님은 참으로 빛나는 인생으로 그의 헌신적인 삶과 업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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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속 프란치스칸’으로서 오 신부의 한 평생은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과 애덕, 형제애를 충실히 따르는 삶이었습니다. 그 삶의 양상은 3000명에 이르는 고아들의 아버지로, 신앙선조들의 순교신심을 현양하는 교회 역사가로, 언론인들의 대부로, 문필가이자 명설교가로, 시간전례(성무일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 기도하는 사제로 진정한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오늘 날에도 2005년에 탄생하여 오 신부의 뜻을 이어가는 ‘오기선 요셉 장학회’는 국내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필리핀과 우간다로 그 수혜 대상을 넓히고 있습니다.

오기선 요셉 장학회

  • 설립 배경: 오기선 신부님을 기리는 이들이 함께 설립한 장학회입니다.
  • 설립 시기: 오기선 신부님 선종 15주기인 2005년에 창립되었습니다.
  • 주요 활동: 가난해서 공부하지 못하는 고아와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 25주년 기념미사: 2015년 7월 30일 오전 11시 경기도 용인 천주교공원묘지 성직자 묘역에서 ‘오기선 신부 추모 25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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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브레인이 오기선 신부님을 알게 된 것은 성심당 빵집이 매출 1천억원을 돌파하는 기사를 쓰면서이다. 성심당의 역사의 기원에 오기선 신부님이 계셨고 진정한 영적 지도자로 고아들의 대부로 많은 사람을 살리셨고 지금도 장학회를 통해 그 일을 하고 계신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삶의 원동력을 제공하신 오기선 신부님을 고인으로 뵙게 되었지만 마음에 뭉클한 울림이 있었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 모든 소망이 이루어졌다.” 라고 고백하신 그분의 인생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 분은 정말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신 아름다운 인생을 남기셨다. 그분의 인생은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계속 그의 정신과 사랑이 장학회로 남아 움직이고 있으니 오늘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욱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게 된다.

매일 기도하고 하늘의 뜻대로 살고자 하신 그분의 인생이 오늘의 SAVE GREET (생명사랑 캠페인)의 등불이 되어 길을 밝히고 있다. SAVE GREET는 이러한 분들의 정신을 찾아내어 담고, 그 아름다운 정신을 이어받아 역사를 남기는 일에 힘쓸 것이다.

캠페인을 넘어 K-컬쳐와 장학사업을 하고 싶은 SAVE GREET는 오늘도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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