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용기와 성공, 김상교 회장님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삶의 용기와 성공, 김상교 회장님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2

서문:
한 사람의 인생은 그의 용기와 행동으로 표현되곤 한다. 이번에 우리는 한 성공한 기업가, 김상교 회장님의 삶과 인생관을 접하게 되었다. 김상교회장님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며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낸 특별한 존재이다.

김상교 회장님의 SAVE GREET 인터뷰 내용:

김상교 회장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행동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공부와 배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쌓고 배움으로써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고, 행동을 통해 그 지식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리더의 종류가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 두 번째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 세 번째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 네 번째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제일 좋은 리더일까요? 또 어떤 사람이 제일 안 좋은 리더일까요? 정답은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이 리더로서는 최고입니다. 그리고 제일 안 좋은 건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제가 그랬어요. 그냥 부지런하기만 했어요. 열심히 살기만 했고 그런데 살아 보니까 잘하는 게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김상교 회장님: 어릴 적의 힘든 경험들은 제게 강인한 의지와 위기 극복능력을 부여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신문팔이 껌팔이 안 해본 게 없어요. 제가 8살 때 서울역에서 신문을 팔다가 잡혀 간 적도 있습니다. 응암동 아동 보호소에 끌려갔던 기억도 있고요. 제 집이 워낙 가난해서 5일을 굶어 보았습니다. 서울사람인데 아버님이 많이 편찮으셨고 저희 큰형님이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어머님이 여덟 식구를 책임을 져야 했어요. 제 꿈은 쌀 장사하고 개 키우는 게 꿈이었어요. 그게 좋아 보여서요. 그때 중학교만 나와서 어려서부터 리어카 끌면서 과일 장사도 하고 안 해본 장사가 없어요. 프로 권도 선수까지 하고 17살에 집사람을 만나고 19살에 아이를 낳다 보니 책임감이 빨리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처와 아이 셋 ! 이렇게 어린 나이에 저는 그냥 청소년에서 청년이라는 누구나 겪는 그 시기가 없이 바로 어른이 되었죠. 40년을 넘게 평생 살면서 단 한 번도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리어카 장사와 노가다 등 닥치는대로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IMF 때 보증을 잘못 서 가지고 쫄딱 망했어요. 당시에 우리 딸이 여기 안양예술고등학교를 다녔었을 때인데 지하실 단칸방까지 가서 5식구가 살았다가 2000년도에 다시 제가 배운 게 건설입니다. 다시 재기를 했습니다. 그때부터는 보증이나 이런 것들은 일체 안 하고 열심히 잘해 가지고 지금은 이런 호텔을 몇 개 하고 있고 임대업을 했습니다. 임대업을 하다 보니까 이거 호텔 쪽에 일을 해보자 그래서 호텔 쪽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만나면 어디 사세요. 어디 출신이에요. 학교 지연을 따지더라고요. 저는 중학교 어디 출신이고 학교는 중학교 나왔는데요. 하고 말하니 어느 순간 사람들이 무시를 해요. 저는 그 당시에도 책을 굉장히 많이 읽었어요. 뭐 어지간하게 배운 사람들보다 뭐 그렇게 부족하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꼭 학벌을 따지더라고요. 스카이라도 나온 사람들이 무시를 하면 괜찮은데 저희 때도 잘 안 가는 변두리 학교라든지 전문대 출신들 그런 사람들이 저를 무시하더라고요. 그럼 내가 공부해 볼까 해서 야간고등학교 졸업하고 야간대학교 졸업하고 좀더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야 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서 중앙대를 석사 과정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다짐하게 되었어요. 절대 결석하지 않는다. 두 번째 누구보다 먼저 간다. 세 번째는 제가 석사 때 항시 과제를 내주면 두 개를 해 갔어요. 잊어버릴까 봐 먼저 했고 하다 보니까 공부가 재미있으니까 하나를 더 하게 되어 원우들과 나누기도 했어요. 그리고 동국대 박사 과정까지 4.5점 만점에 4.39점으로 마쳤습니다. 경영학 박사도 한번 해볼까 해서 경영학 박사도 수료까지는 해놓은 상태예요.

제가 지금에 와서는 공부를 괜히 했다 싶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러잖아요. 아는 만큼 너무 많이 보이는 거예요. 지금도 제가 1주일이면 책 한 권을 읽거든요. 그래서 평균적으로 1년이면 많이 읽을 때는 한 80권 정도 읽고 조금 읽으면 한 60권 정도 읽어요. 저는 무조건 하루에 50페이지를 읽어요. 그런데 재미있으면 책은 더 읽게 되잖아요. 재미있으면 하루에 한 권 읽을 수도 있어요.

작심삼일! 다들 경험이 있었을 거예요. 저는 어디가서 강의를 하든지 뭘 하든지 그래도 하라고 그래요. 자기는 단지 이틀 동안 하고 포기했다 하더라도 하라고 해요. 예를 들어서 담배를 끊겠다 하고 작심삼일했다 쳐도 이틀 동안은 담배를 안 피고 3일째 피웠잖아요. 그래도 이틀 끊었으니 그것만 해도 어디여요. 그게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그것이 역시 또 습관이 되어 끊게 된다는 거죠. 하루를 했어도 안 한 거보다 나으니까 그래서 일단은 생각을 했으면 행동으로 옮겨라. 저는 행동실천가라 행동으로 옮기면서 거기서 하나하나 배워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어요.

저는 2014년도부터 처음 칼럼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한 10년 됐죠. 그런데 배움에는 어른들에게만 배우는 게 아니어요. 아이들에게도 많이 배워요. 우리 딸에게 ” 아빠가 글을 좀 잘 쓰고 싶은데 받침도 틀리고 뭐도 틀리고 잘 안 된다.” 했더니 딸이 ” 아빠 그냥 쓰세요. 아빠 생각나는 대로 쓰시고 그거를 그냥 읽으세요. 그러면 읽을 때 덜거덕 걸리는 게 있으면 그것만 고치기만 해도 사람들이 이 사람 글 잘 쓰네라고 이야기 할거여요.” 하는거여요. 그런 식으로 제가 딸에게 배워서 2014년도부터 지금까지 써 와서 아마 언론에 돌아다니는 게 최소한 백 단위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상교 회장님: 저도 정말 많이 있었어요. IMF 경제 위기 때, 보증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죠. 그때 주방에 가서 술 한잔 먹고 칼로 찔렀는데 뼈에 박혀 많이 들어가지는 않고 무지 아팠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가족과 지인들의 지지와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최고의 행복한 죽음이 무엇일까? 제가 볼 때는 저희 어머님 아버님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신 것 같아요. 우리 아버님이 몸에 이상 있다고 해서 병원에 가니까 혈액암이라고 그래서 입원을 시켰는데 그 다음 날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밭에서 일하시다가 좀 쉬어야겠다 하시고 박카스 하나 드시고 돌아가셨어요. 저로서는 죽음으로 볼 때 그게 굉장히 행복한 죽음인 거예요. 저는 어느 순간부터는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연연해 하지는 않아요. 자살은 거의 혼자 있을 때 일어나잖아요. 함께 있는게 정말 중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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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경합니다. 김상교 회장님. SAVE GREET 강연하시는 모습

결론:
김상교 회장님의 SAVE GREET를 통해 우리는 회장님의 인생 철학과 성공에 대한 고뇌와 행동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단순히 외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내적인 행복과 만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가득차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상교 회장님의 성공 스토리는 많은 노력과 행동의 결과체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통해 발전하고 계십니다. 깊은 존경심으로 힘찬 박수를 보내며 이분을 통해 SAVE GREET의 첫 테이프를 끊게 되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SAVE GREET를 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게 삶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며, 우리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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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교 박사님은 현 사회에서 1인가구 확산화에 따라 공감타운하우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김상교 박사님의 공감타운하우스를 힘차게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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