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 신용호 이야기] 보험과 책으로 나라를 일으키다

교보문고 설립자 대산신용호 님의 철학을 통해 세이브그리트는 오늘날 우리들의 과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SG-HATT NEWS, 알브레인] = 서울 광화문 한복판, 거대한 유리 건물 속에 자리한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단순한 서점을 넘어 대한민국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러나 그 시작은 자본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오히려 “돈 안 되는 사업”이라 불린 선택이었다.

교보문고는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의 청년 사업가 신용호(1917~2003) 회장의 철학에서 탄생했다. 그는 “돈은 보험으로 벌고, 서점을 통해 사회에 환원한다”는 신념을 지녔고, 이를 바탕으로 광화문이라는 서울의 중심에 거대한 서점을 세웠다. 수익보다 교육과 사회 환원을 우선시한 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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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청년 사업가

신용호 회장의 삶은 ‘민족 독립’과 ‘교육 진흥’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 그는 1917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독립운동으로 얼룩진 가문이었다. 아버지 신예범은 농민 수탈에 맞서 싸우다 일제 경찰에 끌려가 옥사했으며, 형제들 역시 항일운동과 문화운동에 몸을 던졌다.

초등학교도 폐병으로 아퍼서 못나온 그는 독학으로 혼자 일본어, 한자를 공부하며 스스로 역량을 키웠고, 천일독서를 목표로 성인이 되기 전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도 했다. 그리고 큰 사업가가 되려면 큰 물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20대 초반 중국으로 건너가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란 신용호는 일찍부터 ‘사업을 통해 독립운동을 돕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가 세운 양곡회사 ‘북일공사’는 성공을 거뒀고, 그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독립운동 자금과 문인 지원에 사용했다. 신용호가 후원한 문인 가운데는 시인 이육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물들이 있었다. 당시 그의 지원은 단순한 경제적 후원을 넘어,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에 맞서 민족의 정신을 지켜내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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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출판과 교육에 뛰어들다

1945년 해방 후 귀국한 신용호는 ‘민족의 재건은 교육에서 시작된다’는 신념을 갖고 출판사업에 나섰다. 그는 민주문화사를 설립해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교양서를 출판하려 했으나, 당시 열악한 인프라와 유통망 부족으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우지 못해서 한이 많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한국인을 위한 사업으로 교육과 보험을 결합한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상했다. 당시만 해도 보험은 사치로 여겨졌고, 국민의 소득 수준은 낮아 시장성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자녀의 교육비를 보장하는 상품-“학자금 마련 보험” 이야말로 민족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확신했다.

1958년, 그는 대한교육보험주식회사(현 교보생명)를 설립했고,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 상품인 ‘진학보험’을 출시했다. 이는 선구적인 아이디어였다. 가난으로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넘쳐나던 시절, 이 보험은 큰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열악했던 교보생명 시작은 불과 9년만에 업계 탑정상에 오르게 된다. 30년 동안 이 상품을 통해 약 300만 명의 학생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으며, 이는 곧 ‘민족 자본’ 형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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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의 설립 –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

교육보험으로 국민 교육에 기여한 신용호는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바로 국민서점 교보문고 설립이다.

1980년, 그는 종로 세종대로 사거리에 교보생명 본사를 세우며 곧바로 목이 좋은 그 지하1층에 “서점을 짓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당시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서울의 가장 비싼 땅, 그것도 보험사 본사 건물 한복판에 수익성이 낮은 서점을 세운다는 발상은 비합리적이었다. 재무 당국 역시 반대했다.

그러나 신용호는 “시민과 청소년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책을 접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설득했고, 1981년 마침내 국내 최대 규모의 서점,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문을 열었다.

개관 당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축하 방문할 정도로 사회적 반향이 컸으며, 이 서점은 단순한 유통 공간을 넘어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교보문고의 운영 철학에는 창립자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초등학생에게도 존댓말을 쓸 것”, “책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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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25년 만에 이룬 세계적 쾌거 -보험업계의 노벨상, 세계보험대상 수상

이렇게 대산(大山) 신용호(辛容浩, 1917~2003) 회장은 교보생명을 1958년 설립한 이후 25년 만인 1983년, 국제보험학회(IIS, International Insurance Society)가 수여하는 세계보험대상인 ‘월계관상(Forrestal Laureate Award)’을 수상하였다. 이 상은 흔히 보험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며, 전 세계 보험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로운 상이다.

신용호 회장은 한국인 최초이자 당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이 상을 수상하여, 한국 보험 산업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쾌거를 이뤘다.

광화문 글판과 국민 서점으로서의 위상

교보문고는 단순한 책 판매 공간을 넘어 국민 정서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사례가 광화문 글판이다.

1991년 처음 시작된 글판은 30년 넘게 운영되며 시민들에게 위로와 성찰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특히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창립자 신용호 회장은 직접 “어려운 시기에 시민들에게 작은 희망을 주자”라며 글판 운영을 제안했다. 이후 글판은 계절마다 바뀌는 문구로 수많은 이들의 삶에 따뜻한 울림을 주었다.

현재 교보문고는 회원 1800만 명, 연간 방문객 5천만 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서점이자 국민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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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의 현재 위기

그러나 최근 교보문고는 구조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다.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 시장의 확산, 독서 인구 감소로 전통적 오프라인 서점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실제로 교보문고는 2022년 139억 원, 2023년 360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경영진은 희망퇴직 비용과 물류센터 투자 등 일시적 요인이라고 설명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서점 산업의 수익 구조가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모기업 교보생명은 꾸준히 지원을 이어왔다.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1500억 원, 39억 원을 유상증자 방식으로 투입해 교보문고를 지탱했다. 이는 “돈은 보험으로 벌고, 서점으로 사회에 환원한다”는 창립자의 원칙이 지금도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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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사 전환과 법적 과제

앞으로의 더 큰 위기는 교보생명의 금융 지주사 전환 가능성이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르면 금융회사가 비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다. 따라서 교보생명이 지주사로 전환될 경우, 교보문고 지분은 2년 내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지분 구조 문제를 넘어, 교보문고의 정체성과 존속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전문가들은 “지분 매각 이후에도 파트너십이나 전략적 투자 등으로 지원은 가능하다”고 분석하지만, 창립자의 철학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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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호의 유산과 교보문고의 미래

신용호 회장은 단순한 기업가가 아니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광복 이후에는 교육과 문화 지원을 민족 재건의 길로 삼은 민족 자본가였다. 교보생명, 교보문고, 대산문화재단 등 그의 발자취는 한국 사회의 교육·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대산문화재단은 국내 문학의 세계화에 앞장서며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역시 그의 “배움과 문화는 나라의 힘”이라는 철학이 확장된 결과다.

오늘날 교보문고는 법적,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지만, 여전히 책과 사람을 잇는 공간으로서 국민에게 사랑받고 있다.

신용호 회장의 삶은 한 청년 사업가의 민족철학이 어떻게 사회와 민족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돈은 보험으로 벌고, 책으로 사회에 환원한다”는 그의 신념은 지금도 교보문고 곳곳에 살아 숨쉬며, 한국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유산으로 남아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인생을 바친 기업가, 교보 창업자 대산 신용호 이야기 / 소비더머니